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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투수' 정민철의 고백, "키 작았던 나, 받아줄 팀 없었다"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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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대전, 이상학 기자] “노력에는 재능이 필요없다”. 

정민철(47) MBC스포츠+ 해설위원은 10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셔 열린 2019 KBO 신인선수 오리엔테이션에 선수단 소양교육 강연자로 참석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까마득한 야구 후배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피와 살이 되는 조언과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정민철 위원은 “계약 순위와 규모, 고교 성적이 있겠지만 지금은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다”며 “올해 신인왕을 탔다고 해서 성공이 아니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갔을 때 나태해지지 않아야 한다. 치밀하게,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꺼냈다. 

정 위원은 1972년 3월생이지만 1973년생 선수들과 동기다. 충남중 시절 1년을 유급했기 때문이다. 그는 “중학교 때 키가 작았다. 나를 받아줄 고등학교가 없어 중학교를 1년 더 다녔다”고 고백했다. “정확히 몇 센치인지 생각나지 않지만 키가 너무 작아 경기도 못 나갔다. 1년을 유급했는데도 잘 안 컸다”는 것이 정 위원의 말이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정 위원은 “매일 동기 선수들이 신문에 랭킹 1~2위로 오르내렸다. 그들을 목표 대상으로 삼아 연습했다. 중학교 때 경기에는 많이 못 나갔지만 기본기 훈련을 정말 열심히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노력했다. 키가 크기 위해 몸에 좋은 온갖 음식을 많이 먹었다. 정말 토할 때까지 먹었다”고 되돌아봤다. 

노력은 빛을 발했다. 고교 2학년 때부터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 키는 프로 입단 후 속도가 더 붙었다. 1992년 고졸우선지명으로 연고팀 빙그레에 지명됐을 때 181cm까지 컸고, 프로 데뷔 후에도 성장이 멈추지 않아 지금의 188cm로 자랐다. 피나는 노력으로 신체적 한계를 극복, ‘전설의 92학번’ 동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201901110551774255_5c37b15ee5f78.png

정 위원은 “신체적으로 힘이 붙고 발달하니 동기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학창 시절 고비가 있었지만 꾸준히 계획한 대로 준비한 결과였다”며 “지금 당장 부족하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신인 여러분들은 나이가 젊어 발전 가능성이 높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힘이 붙는 것을 느낄 것이다. 치밀한 계획, 준비, 나만의 루틴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1992년 빙그레 입단 첫 해부터 14승 평균자책점 2.48로 깜짝 돌풍을 일으킨 정 위원은 1990년대 프로야구 최고 투수로 군림했다. 2009년 한화에서 은퇴할 때까지 통산 393경기에서 2394⅔이닝을 소화하며 161승128패10세이브 평균자책점 3.51 탈삼진 1661개를 기록했다. KBO리그 역대 통산 다승과 이닝 2위, 탈삼진 4위. 화려한 업적을 쌓은 대투수로 시대를 풍미했다. 

정 위원은 “난 야구를 별로 못했다. 우완 최다승 161승밖에 하지 못했다”며 특유의 입담으로 농담을 던진 뒤 “성인야구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핑계를 대는 것이다. 나도 돌아보면 핑계를 많이 댔다. 200승을 할 수 있었는데 161승밖에 하지 못했다”며 “신인 여러분이 포기하지 않고 기록을 깨주길 기대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교육을 마친 뒤 KT 이대은은 “정민철 선배님의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선수 생활에 꼭 필요한 말씀들을 해주셨다”고 고마워했다. 진심 어린 경험담으로 출발 선상에 선 신인들에게 큰 울림을 준 '정민철표' 특급 강연이었다. /waw@osen.co.kr

[사진]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 걸린 정민철 위원의 현역 시절 투구 사진(아래).